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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4/03/24 00:25:34 |
Name |
lovehis |
Subject |
Gallery Dahab - 꿈꾸는 젊은 거장 Nal_rA |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설정은 현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가상일
뿐 입니다. 그냥 편한 하게 읽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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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Dahab
내 이름은 lovehis, 나이는 알 것 없고 중요한 것이 아니니, 중요한 것은 아직 미혼
이다. 뭐... 그래 사실은 그것도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고... 아무튼 직업은 미술평론가,
혹은 미술 중개상이다. 미술평론, 미술 중개... 뭔가 있어 보이는 직업 이라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별거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남이 그린 그림을 적당히 뛰어준 후
비싼 값으로 팔아먹는 장사꾼 이라고 할 까. 자화자찬 이지만, 난 이 계통에서는 조금
이름이나 있기 때문에 내 호평을 받은 작가는 몇 달 스케치 여행을 다닐수 있을 테고,
내가 한번 마음먹고 악평을 한다면 아마도 그 작가는 한동안 그림 도구사기도 좀
힐 들어 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난 아무 작가나 악평하거나 호평 하지 않는다.
철저히 그 작가의 작품과, 작품관에 따른 평론을 원칙으로 하고있다. 뭐... 사실 원칙이
그렇다는 말이다. 사실 아주 가끔은 아닐 때도 있을까나? 인생 살다 보면 뭐 그럴 때도...
날 악덕 미술평론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난 나름대로의 소신이 분명
하고, 나름대로 공정하게 작품을 평론한다고 생각 하지만... 뭐, 어디까지나 나름대로
이다. 아! 그리고 이곳은, 내 사무실 이름은 'Gallery Dahab'. 뭐 겔러리 라고 부르기는
조금 누추한 곳 이지만 그래도... 그리고, Dahab은 이집트 홍해 연안의 작은 마을이름
이다. 내가 우리집을 제외하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이기도 하고... 아무튼 내
소개는 이쯤 해두고, 이제 본론으로. 오늘 부터 가끔씩 그 동안 있었던 내 직업상의
일화를 조금씩 말해보려 한다. 때로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 때로는 작가의 대한 이야기,
그리고 때로는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 등등...뭐... 미술과 사람 사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두면 나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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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젊은 거장 Nal_rA
살면서 누구나 몇 번쯤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험들을 하게될 것 이다. 그런 경험들은 때로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괴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사실,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을 안 순간
대부분의 경우 상당히 난처하고, 무안하며, 때로는 강하게 그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나 역시 그 대부분의 범주에 주로 속해 왔다. 내 직업의 특성상 한번 잘못 판단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결론은 여러 가지로 내게는 커다란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충분한 자료가 없을 때나, 판단의 근거가 미약 할 때는 꼬리를 내리고
판단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해도 나도 사람인 이상 가끔은...
뭐 가끔이라고 해두지... 아무튼 가끔은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인정해야만 하는
아주 불쾌한 상황을 경험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전 나는 그 상황이 나에게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으로 다가오는 신선한 경험을 하였다. 바로 '꿈꾸는 젊은 거장'
Nal_rA에 대한 나의 평가가 틀렸음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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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알게 되고, 그의 그림은 처음 본 것은 벌써 몇 년 전 이였다. 사업상 조금
안면이 있는 P씨와의 약속 때문에 오랜만에 '신인작가 초대전'에 갔을 때 난 그를
처음 볼 수 있었다. 사실 '신인작가 초대전'은 그 때까지 나에게 별로 관심이 가는
전시회는 아니었다. 보통 신인작가라 하면 뭔가 테크닉은 조금 떨어져도 신선한
느낌과 새로운 시도가 있는 작품을 기대 하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경우가
대부분 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신인작가 초대전은 그냥 비슷 비슷한 그림 몇 점과,
기성 유명 작가의 화풍을 거의 완벽한 테크닉으로 흉내 낸 모작 수준의 작품이
주를 이루었고, 새로운 실험적인 시도 보다는 기존에 인정 받은 비교적 안전한
주재나 소재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 작품에는 작가의 혼이나 사상이 들어있을 수 없고,
보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유도할 뿐이었다. 사실, 신인 작가의 발굴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전시회 였지만, 난 그런 이유로 '신인작가 초대전' 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시회를 기피할 수 밖에는 없었다. 결론은 재.미.없.다...
'음... 생각보다 일찍 왔는걸... 조금 둘러볼까.'
서울의 악명 높은 교통상황을 생각하여 조금 서둘러 약속장소로 출발하였지만,
그 날 따라 한산한 거리는 날 생각보다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비는 자유시간, 나는 조금은 한가한 마음으로 전시회장을 둘러보았다. 역시 전시회는
내 생각대로 조금은 지루하고, 개성 없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난 어쩌면
소위, '낭만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Boxer나, '야수파'의 Yellow, 그리고 '모더니즘'의
Garimtos등의 전시회에 온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어쩌면 이들 신인 작가들이 앞에서
말한 거장들 보다 좀더 세련된 테크닉과 진보된 터치로 작품을 꾸몄지만, 그 작품들은
맛 이랄까? 깊이 랄까? 아무튼 그런 중요한 것들이 부족하게만 보였다. 또한, 작품을
설명하고자 나와 있는 작가의 모습도 마치 앵무새처럼 모두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
아무런 열정도 사상도 느낄 수 없었다. 가끔은 그들이 사용하는 화려한 미사 어구
때문에,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말의 의미를 그들 자신이 알고 있는지 궁금 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난 겔러리 구석에 조용히 서있던 그와
그의 작품을 보았다. 멀리서 보기에 조금은 신선한 느낌이 들어 천천히 그 쪽으로
다가갔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난 실망할 수 밖에는 없었다. 체계적인
그림을 배운 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른 작가의 작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테크닉, 그리고 어떤 그림은 완성 자체가 의심스러운 정도로 조잡한 끝
마무리...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그의 태도는 나를 더욱 실망
시켰다. 다른 신인작가들은 앵무새와 같이 같은 말을 반복도 하고, 수 많은 미사
어구를 동원하여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려 노력 하였다. 결과는 어떻든 그들은 분명
노력 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시도도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하긴, 내가 이런 그림을 그렸어도 이런 작품에는 할 말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은 음.... 뭐랄까? 약간은 그 때 유행하고 있던 초현실주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과
같은 기괴한 그림)에 입각한 큐비즘(입체파, 피카소와 같은 추상화)에 정도라 할까?
아무튼 그런 것 이였지만, 이런 작품일수록 작가의 사상이 들어 있지 않으면 그냥
어린아이의 장난 정도로 취급 되기 일 수였다. 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의 작품이
그렇게 보였다.
그의 작품 중 그래도 쓸만했던 작품이라고 해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컴퍼스
위에 이리 저리 펼쳐진 물체에 대한 묘사는 비교적 좋은 단편화였지만, 힘이 느껴지지
않았고, 지나친 단편화로 인하여 조금은 정리 안된 어수선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또한, Boxer나 Garimtos처럼 도발적인 색채와 구도를 사용 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그림의 주제가 지나치게 불확실하였다. 비록 불확실성이 초현실주의와 큐비즘의
기본 이였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불확실성을 내세워, 나 정도의 평론가가
봐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의 그림은 보고 있는 나에게 왠지
모를 답답함을 가져다 주었다. 난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질문 하였다.
"저기... 이 그림이 뭐를 의미 하는 것이지요?"
나의 질문에 그는 대단히 짧게 대답 하였다.
"꿈 입니다."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한 나에게 그의 짧은 대답은 허탈한 느낌까지 주었다. 아무런
열정도 느껴지지 않은 그의 대답을 들으며, 난 속으로 그에 대한 나의 평가에 '-100'점을
더할 수 밖에는 없었다. 뭐... 아직 그는 내가 평론한 정도 위치의 작가는 아니고, 이
정도 작가라면 그런 위치까지 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은 점차
멀리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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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그림을 두 번째 본 것은 평소 인터넷 게시판에서 몇 번 본 선배 평론가
kanopy씨 때문 이였다. 그 날은...어제 먹은 술 때문 인지, 마음에 들던 여인에게
차였기 때문인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은 일요일 이였다. 사실 요 며칠 항상 이런
상태였다. 여자에게 차인 모든 남자처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기다림과 술뿐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취하게 만들었다. 뭐... 사실 자주 있는 일이라 그리 괴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의무방어전 이라 할까? 뭔가 마무리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도...
폭탄주로 깔끔한 끝 마무리... 역시 뭔가 잊기에는 폭탄주가 최고였다.
'음...망할, 역시 폭탄주는 괴로워...'
너무 괴롭기 때문에 잊는 것인지, 잊기 위해서 괴로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육신과
정신이 분리되는 아픔을 느끼면서 난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고 메일박스를 확인
하였다. 수없이 계속되는 정크 메일... 나를 오빠라고 불러주며 반쯤 벗은 몸으로
웃어 주는 모습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래도 내 가족사가 걱정될 만큼 내가 알지 못하고,
또한 행실이 조금은 걱정되는 여동생이 이렇게 많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처럼
메일들을 지우고 있던 나는 낯익은 이름과 조금은 생소한 제목을 보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내 머리속에 인명 리스트를 차례대로 검색한 후 그 이름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kanopy.... Nal_rA후원회 결성....Nal_rA 누구지?'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kanopy씨의 메일에는 신인작가 후원회에 대한 글과 후원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작가 후원회' 조금은 낯선 느낌에 난 메일에 있는
링크를 따라 후원 사이트에 접속 하였다. 사실 그 때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Nal_rA라는
이름은 잊어지고 난 후였기 때문에, 그 이름에 대해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아직 조금 정리가 덜되 보이는 사이트는 온통 Nal_rA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난 그 그림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낯익은 느낌은 떠올릴 수 있었다. 조금 투박하고
정리가 덜된 느낌의 초현실주의적 추상화... 커다란 구두를 신고 뛰어보려는 어린
아이의 미숙함, 그리고 뭔가 껍질을 깨지 못하고 있는 작가의 답답함... 그런 답답한
느낌을 떠올린 순간 난 신인작가 초대전 에서 본 그 청년이 떠올랐다. 그리고 작가의
프로파일을 본 난 내 기억력게 대해 다시한번 감동을 하였다. 바로 그였다. 그 때
보다는 조금은 여러 가지 테크닉과 완성도가 높아진것이 분명 했지만, 여전히 그의
그림은 나에게 답답함과 '알 수 없음'을 선물 하였다. 이런 류의 '알 수 없음'은 그와
같은 비교적 신인 작가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이였다. 아직 자신의 사상과 작품관
그리고 철학적 바탕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알 수 없음은, 단지 무의미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 Nal_rA의 그림들은 그런 무의미에 대표적인 예였다.
보는 이에게 아무 의미 없음을 주는 작품이란 그 작품의 존재 가치를 의심 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볼 수록 아직은 작가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한참
모자란 애송이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마음속 점수 판에는 '-50'점을 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kanopy씨 에게는 조금 미안 했지만 그의 작가 보는 눈에 '-150'점
을 줄 수 밖에는 없었다. 물론 kanopy씨가 Nal_rA의 천재성을 눈치챈 유일한 사람
일 수는 있으나, 그 것을 인정 하기에는 나의 자존심이 허락 하지 않았으며, 어쩌면
미술계의 어두운 면을 잘 알고 있는 나의 눈에는 kanopy님과Nal_rA의 관계가
고호와 테오의 관계보다는, 악어와 악어 새의 관계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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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난 갑자기 뉴욕에 갈 일이 생겼다. 직업상 외국 출장이 잦은 편 이였지만,
그렇게 무작정 가긴 오랜만 이였다. 출장의 이유는 뉴욕에 있는 지하 암시장에
Garimtos의 신작 몇 점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난 그 소문을 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Garimtos, 살아서 전설이 된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로. 몇 년전 무슨 이유인지 붓을 꺾고 산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준 희대의 거장이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요절한 천재'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그의 신작이 뉴욕에 있다니 난 조금은 믿어 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을만한 소식통을 통하여 비싸게 산 정보 이기에...
뉴욕에 온 나는 안면이 있는 몇몇 암 거래상과 접촉하여 비밀 경매장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암 거래상들이 운영하는 비밀 경매장, 영화에서처럼 주로 장물이나 공식적
으로 거래될 수 없는 물건들이 거래되는 곳 이지만, 영화와는 다르게 어두운 분위기가
아닌 화사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비밀 화랑 이였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박력 있고 커다란 덩치의 서양인들과 칼자국이 좀 보이는 몇 명의
흑인을 본면 누구나 조금은 기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몇 번을 와도 이 분위기는
참으로 어색하였다. 일단 많은 사람이 있지만 실내는 죽은 듯 조용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사적인 대화는 암묵적으로 금지 되어 있다. 고객들 대부분이 미술계의
유명인사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부자들이기 때문에 서로 이런 곳에서 만나는
것이 꺼림직하지 않아 서로를 꺼리기 때문 이였다. 뭐, 입장 전에 비밀 서약을 하지만...
그런 비밀 서약이 없이도 충분히 비밀이 지켜질 수 있었다. 잠시 몇몇 안면이 있는
미술계 인사들과 살짝 눈인사를 하며 그 소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난 그 문제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 3점. 난 잠시 동안 그 작품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실망 하고 말았다. 그 그림은 Garimtos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정대로 그의 작품은 아니었다. 정말로 잘 만들어진 모작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모작이라고 하기에도 조금은 아닌듯한 느낌을 주는... Garimtos의 작품은 대담하고
직설적인 그의 현실의식이 들어 있는 작품과, 아무도 눈치 못 챌 정도의 암시와
은유로 나타나는 작품, 그렇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이번 경매장에 나온 작품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작품들은 Garimtos가 주로
사용하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는 방법이 아닌, 자신의 의도를 상대에게 오해하게
만드는 방식의 작품이였다. 너무 깊숙이 숨겨서 의도를 파악해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한 이중 코드 혹은, 다중 코드를 이용하여 보는 이들 에게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조금은 새로운 방법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강렬한 색채는 Garimtos의
모습 이였지만, 그런 색채를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조금은 더 절제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고, 그림을 보고 있는 나에게 어디선가 느낀 듯한 담담함과 함께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Garimtos의 그림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실망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정도의 그림은 절대 모작
화가들의 작품은 아니고, 어느 거장이 장난스럽게 Garimtos의 그림을 흉내 낸 것을,
우연히 암 거래상이 입수하여 Garimtos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그림보다 그림을 그린 작가가 몹시 궁금해 졌다. 그 정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고, 몇 명 수소문 해보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암시장의 특성상 그런 시도는 매우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난 그 궁금증은 일단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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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지나고, 난 다시 사업상 이곳 저곳을 다니며 여러 전시회를 볼 수 있었다.
그 무렵은 우연의 일치처럼 Boxer와 Yellow혹은 Reach와 같은 기존의 작가들이
잠시 휴식기에 들어간 시기였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 Nada와 Xellos, oov
등과 야수파의 후계자 Chojja가 한참 주가를 올리며 개인전, 그리고 수많은 초대전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이유였을까? 유독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혹은
큐비즘 계열의 작가들의 전시회는 좀처럼 보기 힘들어 지고 있었다. 그 즈음에
열린 OnArtist.net 주최의 '악마의 유혹'전... 주로 두 명의 작가에게 비슷한 주제를
요청하여 여는 OnArtist.net의 특성상 이번 전시회의 초대된 작가는 Kingdom과
Nal_rA였다. 난 Nal_rA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평가 때문에 조금은 이번 전시회에
대해 조금의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오랜만에 있는 비 포스트 모더니즘 류의
전시회라는 것에 마음이 끌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회
장은 OnArtist.net 이라는 주최자의 명성에 걸 맞게 수 많은 인파로 만원 이였고,
전체적인 전시장 분위기도 기대 이상의 수준 이었다. 특히, 두 명의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마음 것 살려, 같은 주제를 논하는 것을 볼 수 있는 OnArtist.net 전시회의
특성상 골라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미술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 겔러리들도
많이 눈에 보였다.
Nal_rA의 작품에 크게 기대하고 온 것이 아니었기에 난 왼쪽에 전시되어 있던
Kingdom의 작품 쪽에 먼저 눈이 갔다. 탄탄한 기본기에서 오는 대담한 선, 빠른
수채화보다는, 조금은 시간이 걸리는 유화를 선호하는 그의 성격상 그의 작품은
조금은 진부하고, 느리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느린 느낌을 충분히
보충해 줄 수 있는 그 만의 독특한 컬러가 보는 재미를 주었다. 특히, 다른 모더니즘
작가와는 다르게 전채적인 균형 미 보다는, 약간은 파격적인 모습은 그 자신만의
미술에 대한 철학과 열정이 잘 들어나 있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의 작품은
분명 대단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가 생각한 악마의 유혹은 '괴로움' 이였다. 극한의
괴로움에서 오는 환희, 어쩌면 변태적 광기가 가득한 그림 이였지만 그 광기는
어느 하나 도에 지나침이 없이 정재되어 보였고, 뭔가 잘 절재 된 느낌과 함께 그
고통에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공포에 가까운 광기에 대한 끌림이라...
참으로 대단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을 둘러본 나는 속으로 Kingdom
에게 "+100"점을 줄 수 밖에는 없었다.
Kingdom의 그림을 본 나는 조금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Nal_rA의 그림이 있는 오른쪽
으로 향하였다. 조금은 시쿤퉁한 눈으로 그의 그림을 보던 나는 내 예상보다 많이
좋아진 그의 그림에 약간은 놀라움을 느꼈다. 아직은 미숙한 테크닉과 끝 마무리는
여전히 문제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뭔가 신선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고 준비한
악마의 유혹은 놀랍게도 '꿈'이었다. 이것은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말한 것과
일치되는 것으로, Kingdom의 강렬함과는 대조적으로, 몽롱하고 나른한 그림들로
그는 '악마의 유혹'을 표현 하였다. 그는 사람에게 있어서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무하고, 무모 하다는 것인지를 그림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또한, 한편
으로는 그가 꿈꾸고 싶은 꿈을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작품 '단두대'를 본 순간 난 약간의 충격에 휩싸였다. 강력한 느낌을 주는
유화... 켐퍼스에 한가운데 놓여있는 단두대를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슬퍼하는
사람들이 뒤섞어 난장판을 이루는 가운데 무표정 하게 그것을 지켜 보고 있는 한
남자... 원근법과 초점이 무시되고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비정상 적인 사물을
보면서 난 잠시 내 눈의 건강 상태를 걱정해야만 하였다. 분명, 이 그림은 예전 뉴욕
암 경매장에서 본 그림들과 거의 같은 분위기의 그림 이였다. 강렬한고 분명한 색채,
그리고 깔끔한 끝마무리는 분명 그것의 느낌이였고, 또한 전에 뉴욕에서 본 것과
같이 숨겨진 이중 코드를 이용하여 보는 이들에게 작가의 의도에 대한 착각을 유도해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비슷 하였다. 난 이제 알 수 있었다. 분명히 뉴욕의 그 그림들은
바로 Nal_rA의 그림 이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그의 작품들이 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 놓기는 불가능 하였다. 그의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난 그의
그림에 대한 생각과 방향을 알 수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들은 그에게 너무
먼 몽상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전 그가 그림을 통해 나에게 한 말, 즉
'사람에게 있어서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위험하고, 허무하고, 무모 하다는 것"을
그에게 할 수 있었다. 내 판단에 따르면 그가 가진 재능과 그의 능력으로는 그가
꿈꾸는 이상에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난 그의 이번 작품으로 그의
역량과 실력은 어느정도 인정 하게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작품에 내제되어
있는 한계성이 눈에 보였다. 분명 그의 작품은 독창적 이였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함이 돋보였지만, 그 기발함이란 한계가 있는 것 이였고, 그 신선한 느낌은
분명 오래가지 못할 것이 분명 하였다. 또한, 그의 이번 전시회 최고의 작품인 '단두대'
역시 뭔가 모르게 조금 완성이 덜 되거나, 부족함이 느껴졌고, 그런 나의 느낌은
그의 대한 나의 판단을 '애송이'에서 '조금 실력 있는' 화가 정도로 바꾸고, 내 마음속에
그의 대한 점수 판에는 단지 '70'점 정도를 더할 뿐이었다. 아직 그는 많이 부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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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난 그의 그림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이제 그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
여기저기서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었고, 나에게도 몇 번의 초대장과 평론 요청이
왔었지만 그리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기에 모두 거절 하였다. '사심을 버려야 좋은
평론이 나온다'라는 나의 평소 지론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돈도 별로 되지 않고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랄까... 사실 그 전에 몇 번
그의 작품을 인터넷이나 잡지를 통해 본적이 있어 그의 실력은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작가로서 그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꺼려했던 것 일
수도 있다. 그러던 얼마 전 오랜 고객에게서 그의 그림을 구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당연 이 일은 돈이 될만한 일 이기 때문에 거절 하지 않았다.
'단두대의 역설이 있는 남자의 꿈 이야기... 뭐야 이 제목은...'
그 고객은 그의 작품 중 좀 유별난 제목을 가진 그의 작품을 원했다. 뭐.. 제목이
어떻든 고객이 원한다면야... 나는 수소문 끝에 그가 작업을 하고 있는 SUMA
아뜨리에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약속을 정하여 그 쪽으로 향했다. 역시,
오늘도 서울의 교통 사정은 나를 실망하키지 않았고, 쭉 늘어선 차들 사이에서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돈이 되는 일이니... 음음... 약속시간 보다 30분 정도 늦게
SUMA 아뜨리에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Nal_rA씨 계신가요? 미리 약속하고 왔는데..."
난 아뜨리에 직원쯤으로 보이는 20대 여성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을 하였다.
"아... lovehis씨 신가요? 어쩌죠... Nal_rA선생님은 기다리시다가 작업 들어 가셨는데...
작업 중에는 아무도 안 만나시거든요. 그리고, 한번 작업 들어가시면 2~3시간은
걸리시는데..."
"그... 그런가요... 그럼 좀 기다리죠. 여기서 기다려도 될까요?"
"네... 좋으실 대로... 하지만 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뭐.. 어쩔 수 없죠... 저기 커피나 한잔 주시면..."
직원이 가져다 준 커피를 마시며 난 조금은 불쾌한 마음을 진정 시키고 있었다.
'젠장... 겨우 30분인데... 그걸... 뭐야 자기가 유명 작가나 되는 줄 아나 보지?'
사실 화가라는 직업은 그리 바쁜 직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보통 화가들은 낮 시간
보다는 밤시간에 주로 작업을 하였고, 낮에는 작품구상을 핑계로 반 백수와 비슷한
모습으로 빈둥거리는 것이 일 이였다. 특히, 보통은 예술을 한다는 미명하에 시간
관념도 없기 때문에, 시간 약속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한 1시간쯤 기다렸을까?
갑자기 어디에선가 뭔가 부서지는 듯한 커다란 소리와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 하였다. 마치 망치로 뭔가를 부셔버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광기에
휩싸인 목소리... 난 놀란 얼굴로 여직원을 바라 보았지만 여직원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 하였다.
"아... Nal_rA선생님이 뭔가 좀 안 되시는 것 같네요... 가끔 저러시는데... 아마 곧
나오시겠네요... 저러시면 보통 작업을 중지 하시죠...."
"아...네..."
여직원의 말은 맞았다. 곧 Nal_rA는 태연한 모습으로 로비에 나타났다. 난 한눈에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업이 직업이라 한번 본 사람은 좀처럼 잊지 않았기
때문 이다. 그의 모습과 목소리는 방금 전 들었던 광기 어린 비명과는 다르게 아주
차분하였으며, 조금은 냉정해 보이기 가지 했다.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난 본론에
들어가기 시작 하였다.
"사실... 저의 고객 중에 한 분이 Nal_rA씨의 작품의 구입을 원해서..."
"음... 어떤 그림을..."
"'단두대의 역설이 있는 남자의 꿈 이야기' 라는 작품인데... 의향이 있으신가요?"
"뭐... 저야 팔 수만 있다면 좋지요."
생각과는 다른 시원 시원한 대답 이였다. 보통 작가들은 누군가 자신의 그림을
구입하기 원하면 조금은 시원치 않은 대답이나, 아니면 강한 부정으로 한푼 이라도
높은 가격을 받기를 원하였다. 뭐... 그런 반응을 보이면 차라리 서로 편할 수도 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그럴 경우에는 별다른 흥정 없이 서로 적당한 가격으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Nal_rA와 같은 스타일은 오랜만에 보는 것으로 나의
경험상 아주 노련한 장사꾼이거나 아니면, 진짜 초보자 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뭐... 그럼 어떤 부류일까 한번 볼까?
"그럼... 생각하신 가격은?"
"음... 1원이라도 좋습니다. 님이 결정 하시지요. 단 먼저 보시고..."
1원 이라도 좋다... 초보자군... 이거 오늘은 운이 좋은 날 인 것 같다. 나 같은 장사꾼
에게 가격흥정 의 우선권을 주다니... 어쩌면 대박 일수도 있겠군.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팍 들었다.
"그럼... 그림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잠시..."
Nal_rA 와 여직원은 그림을 가지러 갔고, 난 속으로 오늘의 행운에 대하여 만족
하며 그들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흘렀고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 무렵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lovehis씨 이 쪽으로..."
여직원은 나에게 작업실로 들어올 것을 부탁 하였다. 조금 의외였지만, 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작업실로 들어섰다. 그 순간 난 약간 놀라고 말았다. 내가 들어선
작업실은 내가 생각한 어수선한 직업실이 아니라,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었으며,
곳곳에 있는 조명 그리고 방 한 가운데 놓여있는 작은 티 테이블... 마치 작은 개인
화랑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여직원의 안내에 따라 티 테이블에 앉은 나는 잠시
Nal_rA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베이지색 양복을
차려 입은 Nal_rA가 들어왔다. 순간 나는 생각 하였다. '야...이거 선수 아니야....'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별로..."
"그럼 이쪽으로..."
그의 안내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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