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4/11/01 02:41:24 |
Name |
박진호 |
Subject |
어느 프로게이머의 마우스에 대한 이야기 |
*본 글은 실제 인물과 상관없는 픽션입니다.
*본 글은 실제 인물과 상관없는 픽션입니다.
1년 전이었다. 지금이야 얼마 전 메이저 대회에 우승하면서 부진을 완전히 씻어버렸지만
그 때만 해도 계속 되는 패배에 프로게이머 생활을 그만두려고 까지 했었다.
처음 데뷔했을 당시만 해도 나는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프로리그 승리를 시작으로
양대 대회 메이저리그 16강 진출, 그중 하나는 8강까지 올랐고, 프로리그 결승전 선봉으로
나와 1승을 거두며 우리 팀의 우승에 기여를 하였다.
사람들은 나를 연습생 신화, 무서운 신인이라 부르며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불운이 찾아왔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부터 써오던 마우스가 고장 난 것이다. 몇 번이나 뜯어서 청소해보고
마우스 잘 고치는 분께 맡겨도 봤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똑같은 마우스를 살 수도 없었다. 내가 쓰던 마우스는 휠이 없는 두개의 버튼만
있는 볼 마우스로 옛날에 나온 제품이었는데 더 이상 그 기종의 마우스는 생산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그 마우스 회사는 부도로 문을 닫은 상황이어서 본사에 찾아가 구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은 급한 대로 팀 형들이 추천하는 마우스를 사용하며 백방으로 같은 기종의 마우스
소재를 수소문해 보았다.
마우스야 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0.1초를 다투는 게임의 세계에서
마우스는 게이머에게 생명과 같은 존재다.
익숙지 않은 마우스의 움직임은 컨트롤의 실수를 부르고 그건 곧 패배로 직결되는 것이다.
기다려도 내가 쓰던 마우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난 포기하고 새로운
마우스에 적응하려 애썼다.
형들이 쓰는 마우스는 가장 많은 게이머들이 쓰고 있는 마우스로 성능 상 최고를 자랑하는
것이다. 형들은 별일 아니라며 이번 기회에 좋은 마우스로 바꾸는 것이라며 격려 해줬고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새 마우스에 잘 적응하는 듯 했다.
새로운 마우스를 사용한 첫 시합. 상대는 나보다 전적도 낮았고 맵 또한 나에게 약간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 마우스의 움직임이 낯설었다.
셋팅을 다시 해보았지만 뻑뻑한 느낌은 가시지를 않았다. 찝찝한 마음에 경기는 시작되었고
난 상대방의 9드론에 어이없게 패배하고 말았다. 평소 쉽게 하던 컨트롤에서 미스가
난 것이었다.
시합 후 숙소로 돌아가 다시 연습을 했을 때는 이상하지 않아 그날 컨디션 문제겠지 하며
첫 패배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드렸다.
하지만 패배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스타리그 3연패 프로리그 4연패 등 나의 연패 기록은
어느덧 12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패배하는 경기마다 마우스 느낌은 이상했고, 낯 설은 마우스 움직임에 컨트롤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웃긴 건 연습 때는 이상 없는 마우스가 꼭 시합만 나가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대회
컴퓨터의 이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연습실에서 쓰던 컴퓨터 모니터를 모두 가져와
경기를 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감독님과 코치님은 심리적 문제일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심리치료를 권하였고 상담가를 몇
차례 찾아가 심리치료도 받아 봤지만 나의 연패를 끊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희망의 이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내가 쓰던 것과 같은 기종의 마우스를
가지고 있다는 우리 팀의 팬이 보내 온 메일이었다.
난 그 마우스만이 나의 연패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 확신하며 곧 바로 그 팬에게
연락을 보냈고 그 다음날 광주로 마우스를 받으러 갔다.
약속 장소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프로게이머 ㄱ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계속 그 마우스를 찾고 있었거든요. 아시겠지만 마우스를
바꾼 뒤에 계속 져서.“
“네, 마우스 찾는 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바로 연락을 드릴까 했지만
워낙 아끼던 마우스여서요.“
“아, 네. 오래 쓰셨나 봐요.”
난 행여 오래된 마우스라 작동이 안 될까 조바심에 물어보았다.
“아니요. 오래 된 거긴 했지만 거의 쓰지 않았어요.”
거의 새 것이란 소리에 너무 기뻤다.
“그렇군요. 저기 좀 볼 수 있을까요?”
그 학생은 가방에서 비닐에 둘둘 쌓여있는 마우스를 조심스레 꺼냈다. 난 마우스를 본 순간
그동안의 패배가 모두 잊혀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어?”
비닐을 펴 마우스를 보는 순간 난 움찔 하고 말았다. 마우스에 사인이 새겨져 있던
것이었다.
“어 이건 ㅇ감독님 싸인이네요.”
“네, 제가 무척 좋아하는 프로게이머였죠. 지금은 비록 은퇴하셨지만.”
“네, 저도 지금까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이십니다.”
마우스를 보는 그 학생의 표정에서 그가 왜 바로 연락을 안 해줬던 건지, 왜 그토록
조심스레 가방에서 마우스를 꺼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ㅇ감독님은 프로게이머에 신화 같은 존재, 아니 신화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 e스포츠를
부흥시켰고 메이저리그 5연속 우승이라는 전설 같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또한 군에 들어갔다 제대 후에도 어려울 거라는 세평을 잠재우며 화려하게 우승으로
복귀하였던 최고의 프로게이머였다.
난 그의 게임을 보고 연습하였으며 그의 승리를 보고 프로게이머가 되기로 결심하였을 만큼
ㅇ감독님은 나에겐 의미 있는 존재다.
사실 내가 구식 마우스로 고생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그와 똑같은 마우스, 그와
똑같은 키보드로 게임을 하던 것이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저기, 이 마우스 제가 써도 될까요?”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그래서 연락드린 겁니다. 저에게 소중한 물건이긴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것 보다는
ㄱ님이 쓰시는 게 더 의미 있을 거라 생각이 돼서. 어려웠지만 드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팬으로서 드리니까 꼭 우승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난 그 학생에게 열 번도 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우스를 받았다.
그냥 마우스를 받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그의 사인이 새겨져 있다니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난 금방이라도 우승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숙소로 돌아간 나는 바로 마우스 세팅을 하고 게임을 시작하였다. 부드러운 움직임과
정확한 클릭을 기대하던 나는 한 순간 절망하고 말았다.
새로 쓰던 마우스보다 더 뻑뻑한 게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마우스를 받아왔다는 말에 기대감을 가지고 뒤에서 지켜보던 형이 마우스를 살펴보더니
“야 이거 봐 이거 못쓰겠다. 마우스 받침이 없잖아.”
“어!”
뻑뻑한 이유는 바로 마우스 받침 때문이었다. 마우스가 패드와 딱 붙어 있지 않고 약간
떨어져 있게 해주는 고무 혹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받침이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허무했다. 광주까지 내려가서 받아 온 것이 못쓰는 마우스였다니.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ㄱ인데요.”
“네, 무슨 일이신지.”
“저기 마우스가 좀 이상해서요.”
“네?”
“마우스 받침이 떨어져 있는데 혹시 가지고 있지 않은지요.”
“그래요? 잘 모르겠는데.......”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허전한 마음으로 있는데 이번엔 그 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저기 그 마우스 못쓰실 거 같으면 제가 다시 가져가도 될까요?”
“아. 네 그러세요. 제가 다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찾아 뵈도 될까요. 내일 서울 갈 일도 있고 해서.”
“네. 그럼 제가 고맙죠.”
다음 날 마우스를 가지고 학생을 만났다.
“죄송합니다. 쓰지도 못하고 마우스를 가져와서.”
난 그 학생에게 마우스를 꺼내 놓았다.
“아니요. 제가 더 죄송하죠. 잘 알지도 못하고 이런 마우스를 드려서.
그런데 정말 이 마우스 못쓰는 건가요?“
“아 아예 안 되는 건 아닌데, 받침대가 없으면 게임하기가 어려워요. 마우스랑 패드랑
마찰이 너무 심해서 컨트롤이 힘들죠.“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학생은 마우스를 조심스레 집으며 울먹였다.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사실 이건 제가 쓰던 마우스가 아니에요.”
학생은 그렇게 놀라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릴 적,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 광주에서 m대회 4강전이 열린 적이 있었어요. 전
친구들과 경기를 구경하러 갔었죠. 제가 제일 좋아하던 ㅇ선수 경기였거든요.
학교가 빨리 끝나서 일찌감치 가서 자리를 잡은 저와 제 친구들은 경기가 시작 할 때까지
시간이 남아 야외 경기장에서 술래잡기를 했답니다.
그러다 어떻게 혼자 선수 대기실 있는데 까지 가게 되었어요.
때마침 사람들이 어디로 다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죠.
거기서 선수 유니폼 같은걸 구경하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한 가방이 보였어요.
가방 지퍼에는 ㅇ이란 이름표가 달려 있더군요.
호기심에 가방을 열어보니 거기엔 키보드랑 마우스가 있었어요.
전 어린 마음에 좋아하는 ㅇ선수의 키보드와 마우스가 든 가방을 가지고 선수 대기실을
나왔어요. 그러니까 가방을 훔친 것이죠.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깨달았어요.
내가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을. 경기도 안보고 집으로 도착해서야 말이죠.
전 그대론 견딜 수 없어 경기장으로 가방을 돌려주러 갔어요.
경기는 아직 시작하지 않고 있었어요. 제가 마우스랑 키보드를 가져간 바람에 경기가 지연
되었던 것이죠. 난 어서 가방을 ㅇ선수한테 전해줘야 한다는 마음에 정신없이 뛰었고
그러다 경기가 있던 야외공원분수 근처에서 미끄러져 가방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어요.
분수에 들어가 가방을 건져 내긴 했지만 마우스와 키보드는 물에 젖어 못쓰게 된 뒤였죠.
난 엉엉 울면서 가방을 ㅇ선수에게 전했지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형. 가방을 물에 빠뜨렸어요.’
‘괜찮다. 얘야.’
‘어떻게요. 형 저 때문에 경기에서 지면 어떻게요. 형 꼭 우승해야 되는데.’
‘아니야. 너 때문에 지다니. 걱정 하지마. 형은 마우스랑 키보드랑 또 있으니까 그걸로
게임하면 돼. 이 것 봐. 여기 똑같은 새 마우스랑 키보드랑 있잖아.‘
‘그래도. 그래도.’
'꼭 이기고 결승 올라갈 거라니까. 약속.‘
‘약속.’
‘자 저기 맨 앞줄에서 응원하고 있으렴.’
‘ㅇ, 그 마우스로 어떻게 경기를 하려고.’
‘별 수 있어요? 이거로라도 해야지. 이거 빼고 다른 마우스를 어디서 구해요.’
경기가 끝난 후 ㅇ선수는 관중석으로 내려와 저에게 경기에서 쓴 마우스에 사인을 해서
주었어요. ‘고맙다. 얘야. 가방을 돌려줘서.’ 라고 말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경기는! 경기는 어떻게 되었어요.”
난 다급하게 물었다. 난 순간 내 질문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아. 메이저 대회 5연속 우승의 신화.’
“3대2로 이겼죠. 가방을 돌려주러 갔을 때 ㅇ선수 옆에 감독님께서 ‘그 마우스로 어떻게
게임을 하냐고 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그게 이정도 일 줄은 몰랐어요.“
“정말로 이 마우스가 그 때 쓰던 마우스란 말이에요?”
“네 그 때 마우스를 받아 비닐에 싼 이후 한 번도 푼 적이 없어요. 그 때 ㄱ님이 푼 게
처음이에요.“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일이 있은 이 후 다시는 경기에서 마우스의 이상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연패가 아닌 연승 행진을 시작 하게 되었다.
물론 옛날 마우스가 아닌 새로 바꾼 마우스로 말이다.
그 학생은 내가 쓰던 구형 마우스 보다 더 중요한 마우스,
“자신감” 이라는 마우스를 나에게 준 것이었다.
이 글을 빌어 그 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ㅇ 감독님께도.
ㅇ감독님 존경합니다.
*본 글은 실제 인물과 상관없는 픽션입니다.
* Altair~★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11-01 18:12)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