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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2/08/23 17:06:54 |
Name |
공룡 |
Subject |
<허접꽁트> 락바텀 (2) |
락바텀 (2)
"형!"
"정민아!"
소주 몇 병과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찾아간 곳은 신촌 근처 대학로의 김정민이 운영하는 피씨방이었다. 제법 큰 곳이었고, 어느새 수염이 까실까실하게 난 정민의 모습은 제법 의젓해 보였다.
"나 방금 재방송으로 형 경기 봤어요."
"으응......"
동수는 괜스레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정민은 그런 동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다른 쪽으로 화재를 돌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직원 한 명에 아르바이트 학생이 셋이나 있어서 정민이 일부러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숙소 겸 휴식처로 사용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만 보이는 창으로는 바깥 피씨방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참 피씨방의 모습도 많이 변한 듯 했다. 대형 티비가 군데군데 있었고, 진열장에는 각종 타이틀이 달린 DVD들이 빼곡하게 있었다. 특이한 것은 피씨방에 있는 사람들중에 티비나 컴퓨터를 통해 스타중계를 보는 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너 스타는 그만 둔 거야?"
정민은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되었어요. 요즘 애들 컨트롤은 정말 대단하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그게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넌......"
동수는 문득 2004년에 벌어졌던 메이저방송사들의 통합 대회 결승전을 떠올렸다. 당시 결승 진출자는 다름 아닌 그와 김정민이었다. 7차전으로 진행된 그 경기에서 마지막 7차전까지 갔었고, 한시간이 넘는 접전 끝에 동수의 본진에 핵을 떨어뜨린 정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총 4시간이 넘는 정말 길고 긴 싸움이었다. 그 뒤 동수는 군대에 갔고, 가끔 신문에서 스타관련 기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갑자기 사그러든 스타의 인기 때문에 신문에서 기사를 보는 경우가 적어졌고 그렇게 지내는 중 2006년 봄에 WSC의 탄생을 접할 수 있었다. 부러웠다. 이제 임요환, 강도경, 김정민 등등 많은 게이머들이 돈방석에 앉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군대 가기 전에 활동하는 동안 그럭저럭 게이머 중에는 A클래스에 들어가는 그였지만 군대가기 전까지 모은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제대 후 피씨방 하나 차릴 돈도 될까 말까였다. 그런데 WSC 첫 대회의 우승상금이 5억이었다. 정말 부러운 일이었다. 스타의 인기는 다시 정신 없이 올라갔고, 동수는 제대 후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당시 가장 잘나가던 정민이가 그 해 가을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그뿐이 아니었다. 도경이, 정석이, 기타 임요환, 조정현, 홍진호 등등......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하고 군대에 가거나 혹은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군대에서 티비를 자주 접할 수도 없었기에, 그리고 신문 등에서도 별로 다루지 않았기에 그냥 나이나 기타 여러 사정이 있으려니 했다. 그러는 사이 그가 알던 게이머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거나 은퇴했고, 지금의 게이머들은 모두 생소한 이들이었다. 거의 19세 안팎의 젊은 애들이다. 얼굴에 문신을 하고 온 몸에 피어싱을 한 요상한 모습의 애들이었지만 그들의 작전이나 컨트롤은 놀랍기만 했다. 제대휴가를 나왔다가 공방에서 10전 5승 3패 2디스를 기록한 동수는 자신감을 잃고 제대 후에도 스타관련 방송도 보지 않은 채 그냥 일만 열심히 했다. 사람들이 주말마다 경기장에 가자고 해도 일부러 외면했다. 직장 동료 중에 그를 알아보는 이들도 없었다. 그냥 나이 좀 있는 부장급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눈으로 보았을 뿐......
"형!"
소주 세 병을 모두 마시고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꺼내 가지고 오던 정민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동수를 부른다.
"왜?"
"이진성...... 만나봤어요?"
"으...으응."
"그렇군요."
"무슨 할 말 있니?"
정민은 뭔가 말하려 하다가 그냥 다시 씨익 웃고는 맥주 마개를 비틀어 따서 동수의 잔을 채워주었다.
"아니에요. 그냥...... 잘 하시라구요."
어색함 속에서 술을 나누던 중에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온다. 각자의 일에 빠져있던 이들이 모두 대형 티비를 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동수 역시 궁금함에 밖을 바라봤고, 순간 멍해졌다.
"저게 뭐야?"
티비 속에서는 동수가 오늘 경기를 치렀던 경기장과 비슷한 곳이 비춰지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한 선수가 부서진 키보드를 집어들어 막 달아나던 어떤 남자의 등짝에 집어던지고 있었고, 다른 쪽에 앉아있던 선수는 그 사이에 경기를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경기 중에 다른 이가 난입해서 한참 승기를 잡던 선수의 키보드를 부숴버린 것이다. 방송사고인 듯 했다. 결국 키보드가 부서진 선수는 새 키보드를 갈아 끼웠지만 스타란 게임이 워낙 순간에 승패가 좌우되는지라 이미 게임은 돌이킬 수 없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기에 동수는 바깥으로 나갔다. 시끄러운 함성 속에서 두 선수는 서로를 노려보며 쌍욕을 하고 있었고, 진행요원들이 두 선수를 갈라놓으며 반대편으로 끌고 가는 것이 보인다.
"한 번도 못 본 모양이군요? 하드코어에요. 온갖 반칙이 가능하죠."
옆을 보니 정민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노려보듯 티비를 보고 있었다.
"나......나도 저런 경기를 해야 하는 거야?"
"이진성에게 그런 이야기 못 들었나요? 저런 것만 있는 게 아니죠. 모드가 참 여러가지로 개발이 되어 있어요. 하드코어, 히어로즈, 팀플다이, 테그매치, 온니원, 데쓰매치등등...... 각각 타이틀이 다 있죠. 아마 형도 곧 하나씩 체험하게 되겠지만요."
"......"
"그래요. 저것도 다 각본이...... 으음...... 뭐 그렇다고 이진성을 미워하지는 않아요. 저도 WSC 창단 초기에 몇몇 게임대회에 승리해서 이만한 피씨방이나마 경영할 돈이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더 이상은 못하겠더라구요. 그건...... 더 이상 게임도 스포츠도 아니었으니까요."
다시 시끄러운 함성이 터졌다. 진 선수가 던진 키보드에 상대 선수 머리가 깨지며 피가 흘렀다. 저것도 각본일까? 함성 속에서 정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더 보다가 동수는 밖으로 나섰다. 정민이 잡았지만 약속이 있다며 애써 뿌리쳤다. 길을 나서면서 도경이를 비롯해서 수소문해서 구한, 친한 이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찢어서 버렸다. 아마 도경이나 다른 애들도 자신의 데뷰전을 봤을 것이다. 그들도 WSC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고...... 차마 얼굴을 마주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돈이 필요했다. 두 달 정도만 이진성의 말대로 경기에 나가면 3억은 벌 수 있다고 했다. 그 돈이면 동생과 아버지의 수술비도 벌 수 있고, 빚도 갚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계약금으로 이미 받은 5천만원은 밀린 병원비로 일부 써버린 상태다.
처음에는 나이도 많은 자신을 스카웃 한다는 이진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제대 후 아이디를 새로 하고 들어간 웨스트 서버에서 몇 달동안 잠도 줄여가며 해봤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컨트롤은 임요환이요 생산력은 박정석이요 전략까지 자신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이들이 각 서버마다 열댓 명씩 되었다. 프로 무대는 밟아보지도 않은 이들이 그 정도였다. 감히 대회 출전은 생각도 못했다.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의 이목이 두려웠다. 그래서 스타와 담을 쌓고 일을 했다. 그런 자신에게 어느 날 찾아온 이진성은 그야말로 천사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때는 진정 이러한 것이었는 줄 몰랐다. 돌아오는 길에 대여점에 들러 최근 스타리그 경기를 담은 DVD를 몇 개 빌렸다.
"이제 오니?"
"예."
어머니는 별 말이 없으셨다. 지친 얼굴이다. 남편과 자식 하나가 입원을 하고 수술을 앞둔 상태이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동수가 준 돈으로 희망을 조금 가지게 되었지만 하루종일 병수발로 지친 몸은 천근만근 무거울 뿐이었다.
"밥 먹었어?"
"예, 정민이 만나서 먹었어요. 쉬세요."
"아까 도경이한테 전화 왔었다."
"......뭐라고 그래요?"
"응, 그냥 연락 좀 해달라고 그러더라."
"예, 알겠어요."
동수는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스타를 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컴퓨터다. 이진성이 계약 기념으로 선물한 것으로 시가 400만원은 한다고 했다. 대여점에서 빌린 dvd들을 살펴보다가 하나를 집어넣었다. 펼쳐진 화면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들이 진행되었고, 독특한 문신과 악세사리로 범벅을 한 게이머들이 특이한 표정을 지어가며 열심히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들이 보이는 기술은 신기 그 자체였다. 마린 다섯으로 질럿 넷을 잡아내는가 하면 러커가 셋이나 버로우 되어있는 곳을 질럿 둘과 아칸 하나로 옵저버도 없이 뚫어내곤 했다. 그냥 보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동수는 자신이 겪었기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그냥 무브로 이동하는 질럿들이나, 적을 앞에 두고도 스탑을 시키는 러커의 가시공격들을......
퍼억!
두어 시간동안 경기들을 보던 동수는 dvd 케이스를 벽에 집어던졌다. 목구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완전한 쇼다. 이미 스타의 컨트롤은 2003년 즈음에 완성이 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더 이상의 초월적인 컨트롤은 힘든 것이다. 마린이 질럿 잡거나, 러커를 잡는 컨트롤 역시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도 강제어택등으로 컨트롤을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처럼 일방적인 컨트롤은 실제 상황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는 밋밋한 일반적인 경기로 진행이 된다면 지금까지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이진성은 WSC를 세울 당시부터 이런 식의 진행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보이는 선수들의 세레모니나 대화, 행동 등도 매우 과장되어 있었다. 아마도 헤드셋을 통해 지시가 내려지는 것이리라.
예전에 즐겨보던 미 프로레슬링이 생각났다. 인기가 많은 히어로 레슬러가 제대로 맞지도 않았는데 쓰러지는 상대 레슬러에게 스터너, 앵글슬램, 락바텀등 자신의 필살기를 선보이며 카운트 아웃을 한 후 로프에 올라가 손을 치켜들며 환호하는...... 동수 역시 프로레슬링을 좋아했다. 지금은 중견 영화배우가 된 더 락을 특히 좋아했고, 그의 필살기인 락바텀을 좋아했다. 비록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미프로레슬링은 알면서도 모두 속아주는, 관중과 레슬러가 함께 참여하는 그런 즐거운 한편의 쇼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해나가는 배우였다. 그러나 1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 프로레슬링에서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아니, 프로레슬링 자체가 존립의 기로에 놓인 것이 요즘 IMF를 방불케 하는 미국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동수는 지금 WSC가 그런 존립의 위기에 놓였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스타는 쇼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정당한 스포츠로서 승부를 갈라야 하는데 그것마저 조작을 한다면 대체 그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전 세계인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할 겸 스타를 켰다. 배넷에 들어가니 채널의 이름에서 김동수라는 자신의 이름이 많이 보인다. '김동수짱' '가림토스' '장창천 병*' 등등...... 채널 안으로 들어가니 순전 자신의 이야기 뿐이었다. 모두들 이 새로운 올드스타의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동수는 씁쓸할 뿐이었다.
'저그유저 찾아요. 한겜 하실 분?'
'제가 하죠.'
동수는 저그를 골랐다. 집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대로 상대는 프로토스를 고르고 바로 동수가 경기에서 선보였던 하드코어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서투르다. 간단히 막아내고 역러시를 가려던 동수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상대의 무모한 재차 질럿러시가 들어왔을 때 마치 장창천이 그랬던 것처럼 저글링을 내주며 자신의 본진을 유린하도록 놔두었다. 상대는 신이 나서 뭐라고 뭐라고 글을 써댔지만 동수는 더 이상 모니터를 보고 있지 않았다. 잠시 뒤 엘리가 되었음을 표시하는 글이 떴고, 동수는 컴퓨터를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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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대충 써논거 실시간으로 수정해가면서 올리는군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 올리다가는 도배가 될 듯 하군요^^
온게임넷 하기 전까지 끝나기 힘들듯 하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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